[기고] 필수의료를 병원 선의에만 맡길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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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필수의료를 병원 선의에만 맡길 텐가
  • 병원신문
  • 승인 2026.09.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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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연구원
김도훈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연구원

■ 필수의료를 버텨온 것은 정책이 아니다

분만실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소아과 전문의 없는 지역이 늘어나고, 응급실 뺑뺑이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다.

정부는 그동안 수가 가산, 전공의 정원 조정, 공공정책수가 신설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붕괴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지금까지 필수의료를 버텨온 것은 정책이 아니라 병원의 선의였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 행위별수가를 버리자는 게 아니라, 보정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행위별수가 체계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의료의 질과 다양성을 담보하는 기본 골격으로서 행위별수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분만·소아·응급·중환자처럼 환자 수는 적어도 24시간 인력과 장비를 상시 대기시켜야 하는 진료다. 

행위 건수만큼 값을 매기는 지금의 구조는 이런 영역에 애초부터 맞지 않는다.

환자가 없어도 의료진과 시설은 대기해야 하는데, 그 대기 비용을 보상해주는 장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병원이 사명감으로 버틴다 해도, 적자가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진료과를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검사·영상 등 상대적으로 재정 비중이 높게 책정된 영역을 조정하고, 여기서 확보한 재원을 진찰료·입원료와 고위험·고난도 중증 수술 수가로 옮기는 수가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동시에 필수의료 분야에는 행위량과 무관하게 고정비와 운영비를 보전해주는 별도의 지원체계, 즉 공공정책수가의 실질적 확대가 행위별수가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기존 틀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그 틀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영역에 보완 장치를 더하자는 것이다.

■ 지역에서 필수의료가 완결돼야 한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 체계다. 지역 의료 현장을 들여다보면 언론 보도나 회의 자료로 접하던 것보다 붕괴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필수의료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정부 관계자가 직접 지역 현장을 점검하는 절차가 의무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해법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지역병원에 별도의 지역수가를 마련하고, 필수의료 특별회계를 활용해 인력·시설 투자와 24시간 진료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지역 안에서 분만부터 응급, 중환자 치료까지 어느 정도 완결돼야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의료진도 그 지역에 남을 이유를 찾는다.

■ 일본은 적자를 병원 혼자 지게 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제도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도 분만·소아·응급 진료는 채산성이 낮다는 전제 아래 제도를 설계해왔다.

자치단체가 세운 공립병원과 일본적십자사·제생회¹·후생연² 등이 운영하는 공적의료기관은 지역 중핵병원으로서 소아과·산부인과·응급의료 같은 이른바 ‘정책의료³’를 맡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구조적 적자는 도도부현·시정촌⁴의 일반회계에서 전출금 형태로 보전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필수의료의 적자를 병원 혼자 떠안게 하지 않고, 지방재정이 함께 나눠 지도록 아예 제도화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의료·개호총합확보추진법⁵에 따라 지역포괄케어시스템⁶을 운영하면서, 병상 기능을 고도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 네 단계로 나눠 지역별 필요 병상 수를 매년 추계·조정하는 지역의료구상⁷ 제도를 두고 있다.

응급의료를 포함한 일반적인 입원 치료가 각 지역 안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권역을 세분화하고, 병원 간 기능 분담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앞서 제안한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 네트워크와 방향이 정확히 겹친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이 병원의 선의가 아니라 재정과 제도로 필수의료를 뒷받침해온 방식은, 우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 국가 기반시설을 병원 선의에만 맡길 텐가

필수의료는 국가 기반시설에 가깝다.

도로나 전력망을 민간에 적자를 감수하며 운영하라고 하지 않듯, 필수의료도 병원의 선의와 수가 협상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지역수가 신설과 필수의료 특별회계 확충, 그리고 일본처럼 정책의료의 구조적 적자를 재정이 함께 지는 방향으로의 전환. 이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정책이 또 한 번 시기를 놓친다면, 그 부담은 병원이 아니라 결국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 주석 -

1. 제생회(은사재단 제생회): 1911년 설립된 저소득층 지원 사회복지법인 병원 그룹.
2. 후생연(후생농업협동조합연합회): 농협이 운영하는 농촌 지역 병원 연합체. 지방의료원과 유사.
3. 정책의료: 채산성 낮아도 공공성 위해 국가·지자체가 지원하는 의료(응급·소아·분만 등). 필수의료·공공의료와 유사.
4. 도도부현·시정촌: 일본의 광역·기초자치단체. 한국의 시·도 및 시·군·구에 해당.
5. 의료·개호총합확보추진법: 2014년 제정. 지역 의료·요양 자원 통합 관리 근거법. 지역보건법+노인장기요양보험법과 유사.
6. 지역포괄케어시스템: 고령자가 거주지에서 의료·요양·생활지원을 통합적으로 받는 일본의 지역 돌봄체계.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과 유사.
7. 지역의료구상: 병상을 4단계 기능별로 나눠 지역별 필요 병상 수를 추계·조정하는 일본의 병상수급 관리 제도. 병상수급계획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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