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경험평가, 또 하나의 줄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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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경험평가, 또 하나의 줄 세우기
  • 윤종원 기자
  • 승인 2018.08.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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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평가 불구 영역별 평균점수 80점대 넘어 '우수'
단순 기억력 의존한 주관적 서비스 인식 우려
국내 첫 환자경험평가 결과 공개가 또 하나의 병원별 줄 세우기가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8월10일 의료서비스 환자경험 평가결과를 심평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등급화는 하지 않았지만 병원별 영역 점수를 소숫점 둘째자리까지 표시했다.

첫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대상병원의 영역별 평균 점수가 80점대를 넘어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된 평가결과는 일부 언론의 자극적인 줄 세우기로 오히려 부작용만 낳았다.

국민들 또한 병원별 점수가 의료기관 선택의 가늠자가 될지는 의문이다.

평가대상 병원 관계자는 “한 병원 내에서도 다른 의사, 다른 간호사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각각의 환자들이 0점에서 10점까지 주관적으로 평가한 점수가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번 평가가 마치 전체 환자가 병원의 의료서비스 수준을 평가한 것으로 과대 해석되는 것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법과 적정성평가 관련 고시는 평가대상을 ‘요양급여 항목 중 선정한 대상’으로 규정한다.

현행 보험체계는 요양급여 각 항목의 구체적인 행위 등에 대해 고시를 통해 정한다.

질환의 평가가 아닌 병의원을 이용한 환자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설문조사하는 것이 적정성평가 대상으로 타당한지는 시행 전부터 논란이었다.

적정성평가 고시의 일반원칙에서 평가는 ‘신뢰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방법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한다.

평가기준은 표준화 및 계량화의 가능성, 기존의 임상진료지침이나 진료지표, 최신 의·약학적 전문지식, 비용효과 등 경제성 지표를 고려해 정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심평원이 근거중심의 합리적인 평가를 지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주관적 서비스 인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것은 계량화·객관화된 의료 질 평가라 할 수 없으며 단순 만족도 조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객관적 근거자료와 의무기록을 활용한 타 평가와 달리 경험평가는 환자의 단순 기억력에 의존해야 하므로 조사 시점에 따라 입원 당시 느꼈던 만족도와 달리 조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양급여 적정성평가가 환자의 개인사유 등 다양한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면 평가결과의 왜곡이 클 수 있다.

일부에서는 개별병원의 만족도 및 환자경험평가를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진행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과 함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한다.

환자중심성 평가모형을 연구한 서울대 도영경 교수도 “방법론적 개선의 여지와 의료기관의 수용성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평가 도입기 초기에는 그 결과를 비공개, 또는 제한적으로만 공개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기성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상근평가위원은 “환자에 대한 예의 · 존중, 경청 부문에서 점수가 높게 나왔지만 회진시간 정보 제공, 의사와 이야기할 기회 부문에서는 다소 점수가 낮았다”며 “이는 여러 제도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환경이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노민양 심평원 심사운영실 차장은 “어느 정도 의료 질 향상에 노력을 하고 있고 인프라가 구축된 의료기관이 조사 대상이 돼 높은 수준으로 편차가 적게 나타난 것”이라며 “향후 평가 대상에 규모가 적은 의료기관이 추가되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가결과와 보상의 연계는 2020~2024년 평가 지표가 검토되는 과정이어서 해당 위원회에서 환자경험평가 활용도에 대해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경험평가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은 물론 의료의 질 향상, 나아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의료평가 인프라의 한 부분으로 정착하려면 객관적이고 계량화된 평가 방법 개발과 검증을 위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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